Running Scared와 형사(Duelist)
PMP를 구입해서 짬짬이 디빅파일로 된 영화를 감상하고 있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서 인상 깊은 영화가 두 편 있는데, 하나가 러닝 스케어드(Running Scared)이고, 하나가 ‘형사'(Duelist)이다. 두 영화 모두 독특한 스타일리즘을 강조한 작품이라서 한꺼번에 묶어서 소개해본다.
러닝 스케어드는 스릴러의 풍미를 가한 액션 영화인데, 마피아 조직원이 두목의 살인 증거물인 총을 자기집 지하실에 숨겼는데 이 총을 옆집 아이가 훔쳐내는 바람에 겪게되는 소동을 그린 영화이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우스꽝스러울 때가 있지만, 이 소동은 조금도 유쾌하지 않고-심지어는 유혈이 낭자하여 끔찍하다-숨가쁘게 돌아가며 관객의 목을 죄고 흔들어댄다. 기묘하게 튀어나오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나중에 한가닥으로 풀려 나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린 듯한 시원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이 영화에서 하나의 테이크는 동일한 속도로 보여지는 게 아니라 관객의 맥박을 조종하려는 듯이 어느 순간에는 몹시 빠르게 진행되다가 다시 천천히 진행되다가 혹은 느릿느릿 진행된다. 또한 잦은 플래시백으로 한 순간도 놓칠 수 없이 영화의 흐름을 따라 함께 뛸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롤러코스터를 타라고 누가 강요하던가? 그래도 롤러코스터를 타려는 사람들은 그 짜릿한 맛을 잊지 못해 어떤 불편함도 감수하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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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포도청 포교와 자객 사이의 대결과 애정을 다룬 영화이다. 감독이 이명세이다. 영화만 봐도 감독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배경만 조선시대일 뿐, 사극이라고 하기 어려우며, 포교(남순)와 자객(슬픈눈)의 대결 구도 또한 ‘느슨한’ 소재일 뿐, 사실 발레극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대해 적었던 지난 번의 글에서 우형사(박중훈 분)가 짱구(박상면 분)을 잡으려고 치고박고하는 장면이 마치 탱고를 추듯이 표현되었다고 적은 바 있는데, 영화 ‘형사’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춤추는 대결로 시작해서 그걸로 끝날 정도로 검무(劒舞)로 도배되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그 격투신이 떠올라 영화의 비장미는 날아가버리고 계속 실소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억지로 슬픈 분위기를 자아내려고 하면 다소 짜증도 났다.)
스타일리스트 이명세의 작품답게 텍스트나 플롯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게 아니라, 화려한 율동의 묘사와 미쟝센이 영화를 지배한다. 그의 작품 중 ‘첫사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형사’는 모두 눈송이가 펄펄 날리는 밤 장면이 인상적이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아름다움은 박제되어 영원히 간직된다. 그러나 이러한 박제된 아름다움에서 향기를 맡지 못하는 편식성의 내 영화 취향이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