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5년도 더 된 영화를 이제야 봤다.

[인정사정…]은 한국 형사물의 새로운 전범(典範)을 마련한 작품으로 꼽을 수 있는 영화이다. [공공의 적]이나 [와일드 카드]와 같은 최근의 형사물도 [인정사정]과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무간도]가 홍콩 느와르의 제 2의 전성기를 열었다면 한국에서는 [인정사정]이 액션물의 제 2의 전성기를 열었다고 평가해도 좋을 정도이다.

이제 경찰(특히 형사)들은 더 이상 진지하지 않고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그 인간적인 우스꽝스러움이 리얼리티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게다가 범죄자들에 대한 관객의 분노를 그들이 대신 해소해준다. 법이 허락하지 않았지만 경찰이 뉘우칠 줄 모르는 흉악범들을 때려줄 때의 통쾌함이란…

이명세 감독의 작품이다. 스타일리스트라고 불리우는 그의 작품답게 장면마다 독특한 스타일로 촬영되어서 여러 쟝르가 혼합된 듯한, 특히 타란티노의 킬 빌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명세 영화의 특징상 눈이나 비 등의 자연현상을 효과삼아 분위기 연출이 잘 된 편인데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들도 빗 속의 결투신이라면 한동안 TV에서 패러디된 장면을 통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비는 숨막히는 두 인물의 대결에서 뿜어져나오는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보조적인 장치로서 사용된다. (공공의 적에서 주인공이 살인범과 처음으로 마주치는 장면도 비가 내리는 밤이고, 살인의 추억에서 주인공이 용의자를 두들겨 패는 장면도 비가 내리는 상황임을 떠올려보면 좋겠다.)

누군가가 [공공의 적]에 나오는 많은 장면이 [인정사정]에 대한 오마쥬라고 해서 &[공공의 적]과 비슷한 분위기인 줄 알았는데 그 영화보다 훨씬 유머러스하고 감각적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 유머는 그저 유머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리얼리티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주인공 영구 우형사(박중훈 분)가 짱구를 잡으려고 벌이는 격투 신은 탱고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그림자로 처리되어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서 보이는 화려하고 멋진 격투신과는 달리 실제 싸움은 드잡이나 개싸움에 가깝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춤추는 듯한 격투신의 연출은 1차적으로 무조건반사 수준의 유머를 가져오는 효과로 나타나지만 2차적으로는 리얼리티를 높이고 3차적으로는 다시 관객을 감동시켜 더 높은 수준의 유머로 승화된다. 이것은 감독의 세심한 연출 상의 배려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공공의 적]과 [와일드 카드], [살인의 추억]을 통해 형사 액션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이러한 관심을 한층 더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아무쪼록 [공공의 적 2]도 좋은 작품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댓글 4개

  • 쁘뉴마

    딴 동네 사는 친구들한테, "야 우리나라에서도 드디어 진짜 볼만한 영화가 나왔어! 제목이 노웨어 투 하이드(Nowhere to Hide: '인정사정…' 타이들 밑에 뜨는 영어제목)이라고 하는데 말이야…"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라니요. T.T
    …정작 걔들한테 보여줬을 때의 반응은 노코멘트. 저는 예나 지금이나 다소 과잉된 걸 좋아하는데, 주변 사람들은 그런 데 아주 냉정하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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