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문학

바보상자에 대한 풍자

아래 글은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라는 글이다.

2002년에 봄에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참 재미있는 글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며칠 전에 다시 읽고 유난히 재미있는 글을 하나 뽑아본다.

이 글의 내용은 뭐든지 설명하려하고 박수를 쳐대는 봉가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에코는 봉가인의 일상이 공연화됨에 따라 보여지는 모든 상황을 말로 부연설명하려들고 시도때도 없이 의례적으로 박수를 쳐대는 아이러니한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더 나아가 TV가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하나하나 가르치려들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TV에 빠져들어 우스꽝스럽다는 점을 꼬집고 있다.

전반적으로 모두 황당하고(이 글은 진실일까?) 웃기는 이야기지만, 특히나 아래 내가 따로 표시해놓은 부분은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긴다.

에코는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큼 박학다식하고 훌륭한 학자일 뿐만 아니라, 그 글솜씨나 재치는 더욱 대단하게 느껴진다.

TV사회자가 되는 방법

스발바르 군도의 학술원에서 몇 해 동안 봉가족을 연구하라고 나를 파견했을 때, 나는 아주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봉가 족은 <미지의 땅>과 <행복한 군도> 사이에서 하나의 문명을 활짝 꽃피우고 있는 부족이다. 봉가 인들은 우리가 가진 것을 거의 비슷하게 가지고 있다. 다만 그들은 정보의 철저함에 유달리 집착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다. 그들은 전제와 암시와 함축의 기법을 모른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말을 하며, 그러기 위해서 낱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가 말을 하고 어떤 낱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가 말을 하고 어떤 낱말을 사용하겠다고 미리 상대방에게 알려 줄 필요를 느끼지는 않는다. 그런데 봉가 인들은 다른 봉가 인에게 말을 걸 때, 이런 식으로 말문을 연다.

“내 얘기를 잘 들어요. 나는 이제 말을 할 것이고 낱말들을 사용할 거예요.”

우리는 집을 짓고 나면 방문객에게 동 이름과 번지와 건물의 이름과 호수를 일러준다. 그런데 봉가 인들은 우선 집집마다 <집>이라고 써 붙이고 별도의 표시판을 이용하여 벽돌과 초인종을 지시하며 문에는 <문>이라고 써놓는다. 봉가 인의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면, 그는 <자, 제가 문을 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문을 열고 인사를 한다. 봉가 인이 저녁 식사에 초대를 해서 가보면 그는 나에게 의자를 권하면서 이렇게 일러준다.

“이건 식탁이고요, 이건 의자입니다.”

그런 다음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인다.

“이제 가정부를 소개하겠습니다. 로지나입니다. 로지나는 당신이 드시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 보고, 그 음식을 식탁에 가져다 줄 겁니다.”

식당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극장에 가서 봉가 인들을 관찰해 보면 아주 재미있다. 객석의 불이 꺼지면 배우 하나가 무대에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이제 막이 오릅니다.”

막이 오르면 '햄릿'이나 '상상 환자'등을 공연하기 위해 배우들이 무대에 등장한다. 먼저 배우들의 진자 이름과 그들이 맡은 인물의 이름이 하나하나 소개된다. 연극이 시작된다. 배우들은 자기의 대사가 끝나면 이렇게 알린다.

“제 대사가 끝났습니다. 잠깐 휴지가 있겠습니다.”

몇 초가 흐른 뒤에 다른 배우의 대사가 이어진다. 1막이 끝나면 배우 하나가 무대 앞에 나와 알린다.

“이제 막간의 휴식이 이어지겠습니다.”

그들의 쇼 공연도 인상적이었다. 우리 사회의 쇼처럼 그들의 쇼도 촌극과 노래와 2인 개그와 춤 따위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만 이런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두 개그맨이 나와 사람들을 웃기고 그 중의 하나가 해학과 풍자가 섞인 짤막한 노래를 부르고 나면,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등장하여 춤을 선사하고, 그것이 끝나면 배우들이 먼저 <곧 두 개그맨이 나와 여러분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겠습니다>하고 알려 주며, 그것이 끝나면 <이제 이중창이 이어지겠습니다. 아주 경쾌하고 발랄한 노래일 겁니다>라는 말이 나오고, 노래가 끝나면 두 사람 중의 하나가 <다음은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나와서 춤을 보여 드리겠습니다>라고 소리친다.

나를 놀라게 했던 게 또 한 가지 있다. 봉가 인들의 극장에서는 막간에 광고판들이 막 위에 나타난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자만 그들의 극장에서는 배우 하나가 막간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린 뒤에 어김없이 이렇게 덧붙이곤 했다.

“이제 광고 시간입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봉가 인들이 정보의 정확성에 그토록 집착하는 걸까 하고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혹시 그들은 너무 고지식하고 아둔할 게 아닐까? 그래서 상대방이 <저 인사 드릴게요>하고 말하지 않으면, 그가 자기들에게 인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 생각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가 인들은 공연을 숭배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것을 공연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암시적인 것, 함축적인 것까지 다 드러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인 것이다.

거기에 머무는 동안 나는 그들 덕분에 박수 갈채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에 성공했다. 예전에 봉가 인들은 두 가지 동기에서 박수를 쳤다. 멋진 공연을 보고 만족해서이거나 뛰어난 인물에게 칭찬과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해서였다. 가장 우렁찬 박수를 받는 사람이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었다. 예전에 어떤 극장 주인들은 자기네 연극이 훌륭한 작품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관객 사이에 돈으로 매수한 하수인들을 배치하여 박수를 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장면에서도 박수를 치게 했다.

봉가 인들이 텔레비전 쇼를 처음으로 방영하던 시절에, 프로듀서들은 스탭의 친척 두세 사람을 스튜디오에 초대해 놓고, 시청자들이 볼 수 없는 불빛 신호를 보내 그들로 하여금 이러저러한 순간에 박수를 치게 했다. 봉가 인들은 그런 비결을 금세 터득한 셈이었다. 우리 사회 같으면 그런 박수 갈채는 금방 들통이 나서 신용이 완전히 땅에 떨어졌을 텐데, 봉가 인들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시청자들 역시 박수를 치고 싶어했고 자원자들이 떼를 지어 텔레비전 스튜디오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방청석에 앉아 손뼉을 치는 대가로 돈을 내라 해도 기꺼이 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일부의 극성스러운 시청자들은 박수 부대를 위한 특별 강의를 듣기까지 했다.

이렇게 박수에 얽힌 사연이 모두에게 알려지자, 이제는 사회자가 중요한 순간마다 집접 나서서, <여러분, 아주 힘찬 박수를 보내 주십시오.>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방청객들은 사회자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박수를 치기에 이르렀다. 사회자가 초대 손님에게 직업이 뭐냐고 묻고, 질문을 받은 사람이 <저는 시립 동물 수용소에서 가스실을 담당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기만 하면 열렬한 박수 갈채가 터져 나왔다. 때로는 우리 사회에서 페트롤리니 같은 사람이 무대에 나타났을 때 그러듯이, 사회자가 <안녕하십니까>라고 말하기 위해 <안녕--> 하고 입을 벌리자마자 박수 갈채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또 사회자가 <목요일이면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도 우리는 이렇게 한자리에 모였습니다>하고 덧붙이면 방청객들은 박수치는 것만으로는 성이 안 차는지 자지러지게 웃어대기까지 했다.

이렇듯 박수는 봉가 인들의 TV 방송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심지어 광고에서조차 모델이 <살 빼는 알약 피프를 사세요>라고 소리치면 우렁찬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청자들은 광고를 찍는 스튜디오에 박수 칠 사람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박수는 필요했다. 박수가 없으면 그 광고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시청자들이 채널을 바꿔 버릴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봉가 사람들은 텔레비전이 실제의 삶을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 주기를 원한다. 연기를 하는 배우가 아니라 시청자들과 닮은 방청객들이 보내는 박수는 텔레비전이 세계를 향해 열린 창문임을 말해 주는 유일한 증거이다. 이즈음에 봉가 인들은 오로지 배우들만 박수를 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그 프로그램의 제목은 이 될 거라고 한다.

이제 봉가 인들은 현실에 견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 TV 시청 시간 이외에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박수를 친다. 그들은 장례식에서도 박수를 치는데, 그것은 기뻐서도 아니고 망인에게 칭찬과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다른 그름자들 속에서 스스로를 그림자로 느끼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TV 화면에서 본 이미지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는 실제적인 존재로 느끼기 위해서이다.

어느 날 내가 한 봉가 인의 집에 있을 때였다. 그 집의 친척 하나가 들어서면서 말했다.

“할머니가 방금 트럭에 치였어요.”

그러자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서 손뼉을 쳤다.

봉가 인들이 우리보다 열등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어떤 봉가 인은 자기들이 세계를 정복하게 되리라고 내게 장담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결코 헛된 망싱이 아니라 현실성이 있는 계획이었다. 나는 조국에 돌아오자마자 그 점을 깨달았다. 귀국한 날 저녁에 TV에서 어떤 쇼 프로그램을 보았다. 사회자는 자기 프로그램의 진행을 도와 줄 여자들을 소개하고 나서, 자기가 개그를 하나 들려 주겠다고 했다. 개그가 끝나자 그는 이렇게 소리쳤다.

“자, 이제 춤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또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한 저명 인사가 심각한 정치 문제를 놓고 다른 저명 인사와 토론을 벌이다 말고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잠시 광고 방송이 있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회자들을 방청객을 소개하기도 했다. 자기를 찍고 있는 카메라맨을 소개하는 사회자도 있었다. 그때마다 방청석에서는 요란한 박수 갈채가 일었다.

아연한 나는 놀란 마음을 가누고, 담백한 요리로 잘 알려진 한 프랑스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웨이터가 내 앞에 상추잎 세 장을 가져다 놓으며 말했다.

“이것은 롬바르디아 산 상추로 만든 샐러드입니다. 피에몬테 산 향초를 아주 잘게 썰어서 뿌리고 바닷소금으로 간을 했으며 발삼 향이 나는 가정용 식초에 절여서 움브리아 산 올리브로 짠 햇기름을 친 것이지요.”

1987년

댓글 한 개

  • RedGear

    그반대의 경우가 한국의 경우라고 느껴진다. 애매모호한 말로 얼버무리는 것 또한 문제가 많다. 잘 모르겠읍니다. 심지어는 알겠다고 해 놓고도 하는 것 보면 모르는 경우이다. 심지어는 모르는 놈이 아는 듯도 싶게 모르는 듯도 싶게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뭉게고 잇는 경우다. 나중에야 그 일을 다시 시정해야 한다. 내 위에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일하고 있으면 정말 짜증난다. 차라리 봉가인이 낫겠다 싶다. 왜 사람들이 이글에는 코멘트를 남기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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