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The Hours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의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었다. 주인공 역의 니콜 키드먼은 말할 것도 없고, 에드 해리스, 메릴 스트립, 줄리언 무어…

이 영화는 영국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댈러웨이 부인(Mrs. Dalloway)’을 모티브로 하여 울프가 작품을 쓰고 자살을 기도하는 장면과 현대의 장면을 병치하여 두 개의 이야기를 동시에 진행시킨다.

영화 내에서는 부연 설명이 없어서 이 영화만으로는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다. 소설 ‘댈러웨이 부인’은 크게 댈러웨이 부인이 꽃을 사고 파티를 여는 일상과 사회 부적응자인 셉티머스가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몰락의 두 가지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소설의 주된 줄거리는 서로 만나지 않던 두 사람이 셉티머스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댈러웨이 부인이 전해듣고서 자신도 죽음의 유혹을 느끼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이다. 전혀 연관관계가 없을 듯한 이 두 사건은 이 영화에서 울프가 댈러웨이 부인을 죽이려고 하다가 그녀를 살려두고, 그 대신에 다른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는 (다소 부조리적인) 이유를 드는 것으로 연결이 된다.

그리고 이 소설은 다시 영화에서 묘한 형태로 재연된다. 별명이 “댈러웨이 부인”인 클라리사(메릴 스트립 분)는 소설 속의 댈러웨이 부인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여자이고, 그녀의 전 남편 리처드(에드 해리스 분)은 훌륭한 시인이지만 자기 어머니 로라(줄리언 무어 분)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는 유년기의 기억 때문에 사회 부적응자이다. 그런데 로라가 자살을 시도하고 가정을 버리는 이유는 바로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서 자극을 받고 지긋지긋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꿔왔기 때문이다.

결국 리처드는 문학상 시상식 당일에 자기 어머니와 댈러웨이 부인을 동일시하고 이것을 클라리사에게 대입하고, 소설과 같은 방법으로 클라리사 앞에서 자살을 함으로써 어머니에게 복수하려고 한다. (그의 죽음이 복수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 죽음은 소설에서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댈러웨이 부인의 각성에 대한 하나의 기폭제 역할을 하려는 의도에서 행해진 것일 수도 있다.)

아들의 죽음 후에 클라리사를 찾아온 로라는 자신의 탈출이 운명이었다고 말하고(이것은 울프의 말이기도 하다) 로라와 같은 방법의 탈출구가 없었던 울프는 강에 몸을 던져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았던못했던 생을 마감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여성주의 작가의 기수인 버지니아 울프는 소설을 통해 여성들에게 삶을 다른 방식으로 보고, 스스로의 자유와 행복을 찾을 것을 역설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심한 조울증과 사회의 몰이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역시 시대를 앞서가는 정신은 그 시대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오해와 조롱을 피할 수 없나 보다.

* 울프가 자기 언니에게 키스를 하는 장면, 로라가 이웃 부인에게 키스를 하는 장면, 클라리사가 동거녀에게 키스를 하는 장면이 반복되는 것으로 이 영화를 레즈비언(또는 동성애) 영화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점에만 주의를 기울이면 자칫 편향된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더욱 중요한 관점은 동성애를 개인의 행복의 편린으로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성애라는 소재를 가정과 사회라는 틀 안에서 규정된 여성성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자유를 찾아가는 방법 중의 하나로 볼 필요가 있다.

댓글 3개

  • 진주

    영일이도 이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나도 디아워스에 대한 소회를 적은 포스트를 올린 적이 있는데 나와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진 것 같다. 재미있게 읽고 간다.
    (가끔 와서 가사만 보고 가는데 이젠 가장 유명한 사이트가 된 것 같더구나. 즐겨찾기가 되어 있지 않은 다른 피시에서 사이트를 찾으려고 검색을 하니 바로 나오더라! 참 그 와중에 은교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블로그를 발견하게 되어 반가웠다. 인사를 남기려다로그인해야만 글을 남길 수 있어서 그냥 나왔다.)

  • terzeron

    사실, 제가 문학이나 영화 평론을 배웠거나 업으로 하지 않는 사람이다보니 그냥 제 나름대로의 짧은 생각을 적어보는 정도에 그치게 됩니다. 두서없기도 하고 제 입맛에만 맞는 해석을 하기도 하고…

    특히 작품성이 높은 작품일수록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경우가 많아서 제가 제대로 읽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완전히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걱정을 하면서 글을 쓰고, 쓰고 난 뒤에도 다른 이들의 커멘트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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