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mac McCarthy의 The Road
미국 소설가라서 그런가, 기독교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아이”의 이미지는 인간의 순수성 그 자체에 대한 상징(더 나아가 원죄가 없는 구세주의 이미지)이고, 유랑자들을 순례자라고 표현하는 것도 대뜸 종교적 색채가 느껴졌다. 번역 상의 의도적인 선택인지 모르겠지만 원서에도 pilgrim이라고 적혀있을 것 같다. 또한 거지 노인의 이름 “엘리”에서는 선지자 “엘리야”가 떠올랐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부자의 험난한 여정과 희망은 보이지만, 정작 핵전쟁의 참극을 초래한 인류의 탐욕과 원죄에 대한 반성은 보이질 않는다. 인간의 순수성만으로 끔찍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종교가 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까?
작품성은 참으로 대단하다. 하드보일드한 문체로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의 절망과 공포를 선사한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작품에서처럼, 도덕과 법을 벗겨놓은 인간의 본능과 탐욕이란 원래 이렇게 끔찍한 것인가. 답을 소리내어 말하기조차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