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문학

서른, 잔치는 끝났다 –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뭐가 상관이란 말인가

그러나 대체 뭐가 상관이란 말인가 이미 잔치는 끝났는데 말이다. 그러나! 잔치가 끝났음에도 그 다음 잔치(누굴 위한 잔치인가)는 계속될 것을 시인은 이미 알고 있다.

20대에 읽었던 최영미의 이 시는 그 때에도 격렬한 느낌-마치 망치에 가슴을 얻어맞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었지만 지금도 아찔한 느낌을 가져다 준다. 20대의 내가 느꼈던 격렬함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훨씬 더 컸음을 그때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다음 잔치는 부르다 만 노래를 함께 제대로 고쳐부를 사람들을 위한 잔치가 되길 바란다.

댓글 4개

  • RedGear

    다음 운동은 시작되고 있다고 봅니다. 본격적인 시민 운동이지요. 대학생이 주축이 되던 때는 지나갔읍니다. 노조와 같은 운동이 아니라 시민을 주축으로 하는 국민 의식 개혁운동과 같은 형태라고 짐작이 됩니다. 386과 그 이하 세대의 성장은 앞으로 성숙한 시민 계층의 성장으로 나타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읍니다.

    팔구십년대에 데모에 동조는 해 주어도 주동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금 한국의 주역이 되어가고 있고 나름대로 변화를 바라고 있으니까요. 누구보다도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잘 경험한 세대들이고 세계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생존경쟁에 내 몰린 세대인지라 New Age의 도래를 예감하고 있지요….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읍니다. 지식 정보화의 New Age. 신인류의 탄생이라고 했던가요. 예전의 이데올로기와는 다른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의한 국민이 주인되는…민심은 천심이라고…(결국 정보화에 의한 인터넷 통신 및 Media Research), 올바른 정보의 유통 문화 확립은 모든이에게 기회의 균등을 제기할 수 있음. 국민의 지적 수준 향상-컴퓨터 잘 쓰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음. 중우정치는 결국 국민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문제겠지요.

    문제의 해결자는 우리들 모두라고 생각합니다.

  • RedGear

    잘 모르는 놈이 요즘 회사일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보니 잡글이 길어졌읍니다. 하여간 00학번 이후로는 호모 노에티쿠스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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