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에리와 모차르트
모차르트라는 천재에 가려져 오늘날에는 그다지 유명한 음악가로 남진 못했지만, 소설과 영화를 통해 “살리에리”라는 인물은 모차르트라는 천재를 시기하고 질투했던 사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오해는 러시아의 문호 푸슈킨이 살리에리의 사후 5년 뒤에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라는 작품을 통해 만들어낸 것이며, 피터 셰퍼의 희곡을 영화화한 밀로스 포먼의 84년 작 “아마데우스”는 대중의 뇌리에 오해를 상식으로 심는데 크게 “공헌”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에게 재능의 부족함이나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적개심같은 것을 가졌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정황이 알려져 있다. 이미 궁정 음악가로 성공한 상태이고,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스승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굳이 라이벌 관계로 설정해놓고 의심해보더라도, 동일한 소재를 가지고 동시에 제작했던 오페라 공연에서 살리에리가 더 인정을 받았던 사실도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접어두고 이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가 사실이었다고 상상해보자. 살리에리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다. 다른 이의 천재성을 알아보는 것도 재능이다. 오로지 살리에리만이 모차르트의 시대를 앞선 천재성의 깊이를 알아챘고 그걸 부러워했다. 그걸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켰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의 연예기획사가 연예인들을 키우는 것처럼,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키웠다면 이들의 음악 사업은 아주 성공적이지 않았을까? 오스트리아 황제처럼 자금을 대주는 스폰서 역할을 할 수는 없었겠지만, 유럽 음악의 중심지 빈에서 궁정악장의 지위를 가진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유럽의 여러 제후와 귀족들에게 소개해주기만 했어도 모차르트의 재능과 살리에리의 브로커 또는 에이전트로서의 안목은 더 높게 평가되었을 거라는 엉뚱한 생각까지 해본다.
천재적인 재능도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안목도 흔한 것은 아니어서 화가 반 고흐처럼 생전에는 크게 인정받지 못하다가 사후에 천재성이 알려진 경우가 많으니, 천재라고 해서 범인(凡人)보다 행복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 세상 사 이치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