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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 기록 #03 – 로마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포폴로 광장에서 바뷔노 거리를 따라 정확하진 않지만 1~2km 정도를 걸어 동남쪽으로 걸어 내려오다 보면 스페인 광장(피아자 디 스파냐)이 나온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광장이라고 이름붙이길 좋아해서 도시 곳곳에 Piazza(피아자), Piazzale(피아잘레)로 시작하는 곳이 많다. 확인해보니 Piazza는 보통 의미의 광장이고, Piazzale는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광장 정도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 우리말과는 달리 생각보다 넓은 광장은 로마 시내에서도 몇 군데 밖에 되질 않았다. 사실 이것은 public square에 해당하는 외국어가 우리 말 ‘광장(廣場)’으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생긴 필연적인 오해일 수 밖에 없다.

스페인 광장도 우리 나라의 시청 광장보다 약간 작은 정도라고 할 수 있었고, 그나마 그곳으로 들어가는 길이 좁고 관광객들이 가득 차 있어서 훨씬 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에 비하면 포폴로 광장이나 우리가 나중에 가게 되는 베네치아 광장이 그나마 ‘광장’다웠다.

우리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갔던 명소를 따라가보기로 했기에 나는 우리의 로마 관광을 ‘로마의 휴일 테마 여행’이라고 이름붙였다. 스페인 광장도 그 영화에 나왔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유럽 전역에서 놀러 온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스페인 광장의 중앙에는 분수대가 있는데, 이 분수대는 테베레 강이 범람하여 배가 그곳까지 떠내려왔던 것에서 착안하여 배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나는 벌써부터 지쳐서 계단은 오르지 않고 10여 분간 분수대 앞에 앉아서 시원함을 즐겼는데 그 잠깐 동안에 사람과 말과 개가 분수대에서 나오는 물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페인 대사관이 여기에 위치해 있어서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다는 스페인 광장의 계단을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이곳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우리는 스페인 광장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아 급히 트레비 분수(폰타나 디 트레비)로 향했다. 포폴로 광장에서 스페인 광장까지의 거리만큼을 더 가면 트레비 분수가 있다. 시내 중심가에서 상당히 가까운 편이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좋았지만, 여행 첫날이라 우리가 관광을 늦게 시작한 탓에 트레비 분수만 보고 오늘의 관광을 마치기로 했다. 여기도 스페인 광장만큼이나 많은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서로 가까이에서 분수를 보겠다고 좁은 입구에서 밀고 당기면서 뒤섞이는 인간들을 보니 유럽인들도 에티켓이고 나발이고 없는 것 같았다.


트레비 분수는 삼거리에 만든 분수라는 뜻이다. 가운데 바다의 신 넵튠이 상당히 거만한 포즈로 뭔가를 지시하고 있다. 그의 아들인 트리톤(들)이 고둥으로 만든 피리를 불면서 거친 바다와 잔잔한 바다를 상징하는 두 마리 말 갈기 끄댕이를 잡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한 번 거들떠 봐주자.


트레비 분수에는 뒤로 돌아서 동전을 분수에 던지면 나중에 다시 돌아온다는 속설이 있는데, 알고보면 매너없는 유럽인들에 실망하고, 유색인(아프리카인, 중동인)들이라곤 관광객이 전혀 없고 죄다 변변찮은 기념품이나 팔고 있는 그들의 열악한 처지가 안타까워 동전을 던진다는 게 사치로 느껴졌다.

해가 어둑어둑해지는 시각이 되어 우리는 트레비 분수를 살짝 벗어나 골목길에 있는 젤라또(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가 젤라또를 사서 입에 물고 테르미니 역을 향해 걸었다. 가다보니 의도하지 않게 바르베리니 광장을 보게 되었는데, 이 광장에는 트리톤 분수대가 있었다. 역시나 여기서도 트리톤은 고둥 피리를 불고 있었다.

여기서 남쪽으로 언덕길을 올라가면 콰트로 폰타네라는 유적이 있다고 해서 지칠대로 지친 발을 이끌로 힘들게 언덕을 올랐더니 따로 꾸며놓은 유적은 없고 왕복 2차선 도로가 교차하는 사거리의 각 블럭 코너에 조그만 분수대가 이름 그대로-콰트로와 폰타네는 4와 분수를 의미함-4개 있었다. 거의 동네 약수터에서 물 나오는 수준으로 초라했다. 이걸 보곤 이탈리아 인간들은 별거 아닌 것도 관광 아이템으로 잘도 우려먹는구나 싶었다. 우리 말고 일본인같아 보이는 아가씨도 한 명, 사진을 찍으며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불쌍한 동양인들… 콰트로 폰타네 사진은 별로여서 여기 신호등을 기록으로 남겨놓는다.

테르미니역으로 가는 길에 있는 공화국 광장(피아자 델라 레푸블리카)은 이탈리아 통일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광장인데 반원형의 2개로 나뉘어진 아케이드 건물과 중앙의 분수대로 이루어져 있다. 테르미니역이 철도 교통의 중심이라면 공화국 광장은 도로 교통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생긴 그대로 로터리로 이용되고 있었다.

테르미니역에 도착한 우리는 여행 책자에서 추천해 준-실은 눈에 바로 띄는-피자 패스트푸드 점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피자는 피자같지 않았고 숙소로 사 들고 간 맥주는 한국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씁쓸한 맛이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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