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목상대
좀 오래된 이야기이다.
통속소설은 예술적 가치 대신에 흥미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소설을 뜻한다. 요즘에야 통속소설이니 순소설이니하는 구분은 별 의미가 없지만, 작가 박범신은 이런 사전적인 의미에서 통속소설 작가였다.
80년 대에 내가 알던 박범신은 불의 나라, 물의 나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데 성공했다. 나는 그를 통속작가의 대표적인 인물인 정비석과 마찬가지로 딱지붙이고 더 이상 그의 작품을 읽지 않았다. 박범신은 90년 대 들어서 절필을 선었했다가 96년부터 다시 작품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표현력이 참으로 놀랍다. 97년에 발표된 자전적인 작품인 “골방”의 한 구절을 옮겨 본다.
“작가가 특별히 형벌로서의 삶은 아니지만, 형벌로서의 삶을 면제 받을 수 없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형벌은 삶 자체였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살아 있는 무게만큼의 형벌을 지고 산다는 것. 나는 작가 노릇을 그만 둔 뒤에 더 선연히 깨달았다. 작가이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으므로, 그 형벌의 연원을 물 맑은 눈빛으로 보고자 나는 여기 있었다.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쓸쓸한 삶의 본원에 나날이 다가가 이윽고 참된 아트만의 정체를 꿰뚫고자 하는, 결국 아무것도 꿰뚫지 못할망정, 꿰뚫고 싶은 그리움을 따라가는 쓸쓸한 희열, 그리고 도정이었다. 내가 작가 노릇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궁벽진 굴암산 산자락 오두막에 흘러와, 저기 캄차카에서 날아온 쑥새, 콩새들과 아침 저녁 마주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지금껏 내가 끝없이 분열하며 피흘리는 것이 작가라는 이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한동안 나의 관심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던 작가는 예술과 통속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한 차원 더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그를 두고 통속작가 운운하는 것은 내가 저속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창작의 고통을 모르고 그저 소설을 소비해왔음을 내보이는 꼴이 아니겠는가.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