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문학

그리움 – 이용악

그리움이용악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시인 이용악은 서정주에 비견할 만큼 대단한 시재(詩才)를 가진 시인이었으나 한국전쟁 전 남로당 활동으로 투옥되고 인공 치하 때 풀려나서 월북한 인물이다.

서정주를 친일이니 뭐니 비난해도 그 시재만큼은 누구나 인정을 하는 것처럼 월북 작가에 대해서도 색안경을 벗고 작품을 대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물론 서정주의 친일행각이나 월북 작가들의 사상성에 대해서는 따로 비판해야겠지만)

당시에야 공산주의가 그에게는 불가피한 사상적 선택이었을지 몰라도 월북 이후에 경직된 사회체제 안에서 이런 서정적인 시를 쓰는 작가가 견뎌내야 했을 괴로움을 짐작할만하다. 같은 월북시인이었던 백석(관련 글)도 비슷한 이유로 괴로워했다고 한다.

전에 어떤 글에서 눈이 사랑에 대한 비유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시에서는 제목에서 밝히듯 그리움에 대한 은유로 사용되고 있다. “북쪽에 (함박)눈이 오는가?”라는 질문은 북쪽 지방의 작은 마을에 있는 ‘너’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간다는 의미이다.

전체적으로는 “그리운”이라는 동일한 시어를 반복하여 다소 투박해 보이는 게 아쉽다. 그러나 그 앞의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라는 시적 표현은 이게 과연 반 세기 전의 시작(詩作)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모더니즘적인 세련됨을 보여준다.

좋은 시는 시간이 흘러도 명작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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