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첫 눈에 대하여

첫눈이 곧 올거란다.

난 “첫눈=첫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왜냐고?

한때 아름답지만 그것도 금방이고 곧 사라지거나 좀 더 오래 남아있으면 지저분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악한 비유에 너무 많은 완결성(consistency)를 요구하지 말기를…

내가 대단한 창조성을 가지고 눈을 사랑에 비유한 것이 아니라 이미 여러 작가들이 하얀 눈을 순결한 사랑에 비유한 바 있다. 또한 첫눈은 설레임의 감정과 통하므로 아직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대상이나 경험에 대한 상징물이 된다.

첫눈 오면 첫사랑 만나야겠다고 하도 여러 번 중얼거렸더니 아내가 묻는다. 누가 첫사랑인데? 내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보니 누가 첫사랑이었는지 모르겠다. 젊은 시절에 연애 경험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딱히 누가 첫사랑이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결혼할 생각이 들만큼 사랑했던 사람이 아내 밖에 없으니 가장 마지막에 만난 아내가 첫사랑인가? 그러나 그럼 이건 '첫' 사랑이 아니겠지.

어차피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첫눈이라는 건 기껏해야 올해의 첫눈이지 않은가. 진정한 첫눈이라면 지구가 빙하기에 접어들면서 내렸던 최초의 눈이라든가 아니면 많이 양보해서 내 생애에 처음으로 본 첫눈 쯤은 되어야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첫눈일 텐데 말이다.

옛날에 사귀었던 이들의 이름이 잘 생각나질 않는 걸 보면 내가 세상에 태어난 해에 내렸던 첫눈처럼 기억 저편으로 완전히 넘어갔나보다. 첫눈 오면 첫사랑 만나야 되는 거 아니냐는 내 입버릇이 오래 전 누군가와 첫눈 오면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던 것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누군가와의 오랜 약속을 지킬만큼 어리석지도, 순진하지도 않다.

흰 눈과 비교되는 나 자신이 부끄럽지만 눈도 곧 더러워지겠지라며 냉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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