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ympus Pen EF 자가 수리기
2002년 7월 7일 삶 그리고 사진 LPG에 작성했던 글이며, 얼마 전에 cyworld의 Pen Maniac 클럽에도 올렸다.
하프프레임(Half-frame) 시대를 마감하는 기종으로서 Pen 시리즈의 마지막 제품이었지만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바로 풀프레임 컴팩트 카메라 시대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하프프레임이다보니 24장 넣으면 48컷이 찍히고 36장 넣으면 72컷으로 나뉘어 찍히는 무식한 카메라입니다. 72컷을 모두 찍어본 적도 없고 그걸 인화하면 비용도 장난이 아닙니다. 그래서 현상/인화하지 않고 오래 방치했다가 필름에 빛이 새어들어가서 노랗게 떠버린 적도 흔하게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연유로 애물단지 취급을 받아서 잘 쓰지 않게 되었는데요(제가 늦게서야 사진에 취미를 가지게 된 것에는 이 놈의 영향도 적지 않습니다.), 사진에 취미를 가지고 나서는 이 놈도 만만하게 보이지가 않더군요. 카메라만한 찍사가 없으니 카메라를 못 쓰는 찍사가 바보지 카메라가 바보는 아니더라 이거죠.
그런데 이 카메라를 제가 스리슬쩍 접수한 이후 어느 날인가 보니 렌즈부가 충격을 받았는지 렌즈 주위에 있는 감도링(ISO/ASA 25~400)이 망가져서 마구 헛돌지 뭡니까. 그래서 작년 말인가 올해 초인가에 명동에 있는 올림푸스 A/S 센터에 맡겼습니다. 5000원 주고 수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헛돌더군요. 그동안 결혼, 전직, 이사 등의 굵직한 건들이 많이 걸려있어서 신경을 못 썼는데 며칠 전에 갑자기 열받더라구요. 5천원이나 주고 고쳤는데 증상이 똑같다니… 그래서 직접 분해해서 고쳐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어차피 값도 안쳐주는 허접한 중고 똑딱이라서 분해했다가 못 고치고 다시 원상복구해 놓지 못해도 별로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카메라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거 하나쯤 없어진다고 아쉬울 게 없었으니까요.
일단 외장을 벗겨보려고 눈에 띄는 볼트를 모두 해체했습니다. 그런데 볼트빼고는 아무 것도 분해가 되질 않더군요. 물론 UV 필터는 분해됩니다만… 그래서 레자(leather; 손이 닿는 부분의 가죽으로 된 외장)를 떼었더니 그 밑에 5개 가량의 볼트가 더 숨어있었습니다. 이걸 풀어냈더니 뒷덮개만 떨어져 나오더군요. 이쯤에서 욕이 나옵니다.
도대체 위 커버와 아래 커버, 감도링 부분이 어떻게 물려있는지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한 30분을 고민했습니다. 인터넷 검색도 해봤는데 당최 Pen EF는 찍사들의 관심 밖에 있는 허접 카메라라서 Pen EE3는 분해기나 분해도를 찾을 수 있었지만 Pen EF는 없더군요. 그래서 이 방법도 포기…
필름 감는 리와인딩 크랭크를 돌리다보니 그 밑에 볼트가 2개 있더군요. 그래서 일단 그걸 풀었습니다. 위 커버를 힘주어(부러지기 쉬운 구조였습니다만) 뽑았습니다. 그랬더니 플래시가 덜렁덜렁거리더군요. 그리고 아래 커버는 '에라, 모르겠다'하고 그냥 힘껏 잡아당겼더니 뽑혔습니다. 위 커버를 벗기면 노출지침이 왔다리 갔다리하는 게 보입니다. 이걸 잘 응용하면 롤라이처럼 노출값을 뷰파인더에서 보이게 할 수 있겠던데 귀찮아서 그만뒀습니다.
이번엔 렌즈 주위에 동그랗게 감싸고 있는 감도 링에서 막혔습니다. 감도링 파트를 고정시켰던 모든 볼트를 풀었는데도 안 떨어지는 겁니다. 여기서 또 1시간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플래시를 나오게 하는 레버 밑에 검정색 금속박막이 있더군요. 이걸 강제로 휘게 해서 잡아당겼더니 약간 찢어지면서 떨어져 나왔습니다. 그 밑에 볼트가 하나 더 있더군요. 결국 감도링 파트가 분해되었습니다.
감도링은 링에 25부터 400까지 ISO/ASA 수치가 적혀 있고 그 값이 적혀 있는 위치에 딸깍거리며 걸리고 힘을 줘야 돌아가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헐겁더라구요. 분해를 해보니 ISO 수치 부분밑에 0.3mm 정도의 홈이 파여져 있고 아주 작은 볼 베어링이 걸리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 볼 베어링을 밀어주는 스프링이 있고, 스프링을 지지해주는 얇은 금속판이 있습니다.
그 금속판을 감도링 파트에 고정시켜주는 볼트가 꽉 조여지지 않고 헛도는 게 원인이었던 겁니다. 볼트가 고정이 안 되니 금속판도 고정이 안 되고 스프링에 밀리고 스프링이 볼 베어링을 밀어주지 못하니 감도링의 홈에 걸리지 않고 헛도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플라스틱으로 된 나사선(thread)부분이 망가져 있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어서 순간접착제로 붙여버렸습니다.
그리고 재조립… 아주 단단하게 고정되어서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