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토지’ 다 읽다
2005년 6월 중순부터 읽기 시작한 박경리의 ‘토지’ 전 21권을 딱 8개월 걸려서 다 끝냈다.
보통 같은 기간 중에 읽고 있는 책이 3~4권씩 되니 21권이나 되는 대하소설은 부담이 적지 않다. 게다가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같이 읽는 바람에 작년에는 한두 권 정도 분량의 장편 소설을 별로 읽지 못했다. 올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끝내고 나면 다시 장편 소설에 집중할 계획이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결말 부분이,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에 항복을 하자 조선이 해방된다는 시점에서 갑자기 끝나 버려 다소 당황스럽고 허탈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토지’는 일제 강점기의 모습을 손에 쥘 수 있을 만큼 생생하게 그려 낸 뛰어난 작품이며, 개인적으로는 한국 문학의 최고봉으로 감히 평하고 싶을 정도이다. 일제 치하에서 고뇌했던 지식인과 민중의 모습을 마치 현재의 모습인양 절절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박경리 선생의 필력과 통찰력 덕분이라는 감탄이 절로 흘러나온다.
민족주의자의 입을 빌려 말할 때는 작가가 민족주의에 경도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다가도, 코스모폴리탄의 생각을 풀어놓을 때는 작가가 코스모폴리탄인 것 같기도 하고, 공산주의자, 일본 경찰의 앞잡이 등의 인물을 묘사하고 그들의 생각을 엿보게 되는 순간에는 다양한 인물 군상의 실체적인 가치관을 마치 내 것인양 생각해보고 그 당시의 보편적 인식과 오늘날의 기준에 빗대어 반성해보곤 할 수 있었다.
그 시대의 인물들과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며, 함께 고뇌할 수 있었던 경험을 하게 해 준 작품 ‘토지’에 깊은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인용하고 곱씹어 생각해보고 싶은 부분이 여러 군데 있었는데 미처 표시를 남기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나 다음에 다시 한 번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니 반드시 다시 음미하며 읽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