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 기록 #01 – 서울에서 로마로
22일
준비는 다 되었다. 대략의 일정도 다 짰고 준비물도 다 챙겼다. 가방은 3번이나 다시 쌌다. 작은 배낭에 넣으려니 1주일 동안 갈아입어야 할 옷의 부피가 만만치 않다. 겨우 구겨서 집어넣었다. 카메라와 28mm 광각 렌즈, 85mm 망원 렌즈에 고급 필름 위주로 30롤이나 준비했다. 결정적으로 카메라 가방을 새로 샀다. 빌링햄 L2. 가방에 필름까지 25만원이나 들었다.
21:00 개봉동 출발, 그러나 공항버스는 이미 운행 시각이 지나서 인천국제공항까지 운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신월동에서 한 번 갈아타고, 김포공항에서 한 번 갈아타서 겨우 막차타고 인천으로 향하다.
22:00 원했던 시각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서 병무청 공항사무소에 들러 병역 만료 도장을 받았다. 이제는 불편하게 출국할 때마다 병무청 공항사무소에 들러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드디어 진정한 복무만료인가?
22:30 집합 장소에 나가보니 장과장님 빼고는 나온 사람이 없다. 연락을 취해보니 늦은 시각이라 인천행 공항버스가 끊겼을 뿐더러 불꽃놀이때문에 올림픽대로가 꽉 막힌다는 거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나야 사진을 취미로 하니 여러 인터넷 사진동호회에서 한강의 상황을 접하고 있었다.) 결국 11시에야 모두 집합해서 발권하고 가까스로 탑승 수속을 마쳤다. 발권 창구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우리가 2백 여 명 중에서 마지막 5명이었다. 덕분에 가장 안 좋은 좌석에 앉아서 10시간 가까이 버텨야 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일이 암담하다.
23일
00:30 인천 공항에서 두바이(Dubai) 행 항공편 출발
05:30 두바이에 도착했다. 두바이 시각으로 새벽 5시니까 8시간 쯤 걸린 셈이다. 손으로 검사받으려고 필름을 따로 포장해왔는데 여기 공항직원이 막무가내라서 어쩔 수 없이 검색대에 밀어넣었다. 몹시 아깝고 짜증이 났다. 두바이 공항은 직선으로 길쭉하게 생겼다. 공항 중앙 지하에 면세구역이 있어서 구경했다. 나중에 귀국할 때 몇 가지 선물을 사려고 봐뒀다.
07:15 두바이 공항에서 로마(Rome) 행 항공편 출발
11:35 로마 피유미치노(Fiumicino)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이 생각보다 작다. 국제공항인데… 입국 수속 절차라곤 찍기 싫은데 마지못해 찍어주는 듯한 도장을 여권에 받은 것 뿐이다. 도장 잉크조차 제대로 안 보인다. 이게 뭐냐! 이탈리아는 첫 인상부터 헐렁하다.
공항에서 집으로 전화 한 통 넣고, 길을 건너니 바로 철도역이 있는데, 철도역에서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안내창구 직원한테 길을 묻다가 결국 셔틀버스를 소개받았다. 안내창구가 아니라 셔틀버스 소개업자인 것 같았다. 내가 여행에서는 기차표도 끊어보고 그러면서 가는 거라고 우겼더니 그 놈의 업자가 학생으로 할인해준다고 해서 그냥 버스타고 가기로 했다. You are student! You are student!라고 자꾸 말도 안 되는 영어로 강권하기에 그냥 마지못하는 척 1인당 10유로에 표를 끊었다. (기차표는 9.5유로)
한 25분 기다리니까 우릴 부른다. 그래서 따라갔더니 어떤 할아버지 운전사가 봉고 버스 뒷문을 열어주고 짐을 실으란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들어가는 동안 내내 과속을 해대서 할아버지가 쓰러지든가 허접한 차가 분해되든가 둘 중 하나일 거라고 믿었지만, 결국 안전하게 우리가 예약한 호텔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즈음의 이탈리아의 날씨는 우리의 3~4월 날씨 쯤 되는 것 같았다. 이런 곳에서라면 살만하겠다 싶었다.
숙소는 테르미니(Termini) 역에서 1.5km 정도 떨어진 지오반니 지올리티 가(Via Giovanni Giolitti)에 위치한 Center 1-2-3 호텔이었는데, 그럭저럭 깨끗했다. Center 1-2-3 호텔은 각각 다른 건물에 나뉘어져 있는 호텔이고 우리나라로 치면 장급 여관 수준인 호텔이었다. 우리가 처음 잘못 들어갔던 Center 3는 할머니가 카운터에 앉아 계셨고, Center 2에는 젊은 남자가 있었으며 짐을 풀고 나올 때에는 할아버지, 저녁에 들어올 때는 또 다른 할아버지가 바꿔가며 카운터를 지키고 계셨다. 이런 걸로 봐서는 가족이 운영하는 숙박시설이 아닌가 싶었다.
(다음 편은 사진을 스캔하는 대로 천천히 올릴 예정… 올해 연말까지 모두 스캔해서 정리할 작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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