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미덕
나는 미덕(virtue)라는 단어 표현을 즐겨쓰는 편이다. 무언가의 효용성을 따지는 습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번 여행에서 깨닫게 된 여행의 미덕은 바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도식처럼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1차적으로 남의 결점을 바라보고 내가 그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과정을 통해 2차적으로 나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를 깨닫는 순간이 일상보다 더 빈번이, 또한 더 강력하게 실재화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여행은 힘들다. 편한 건 여행이 아니라 휴양일 뿐이다. 아무리 편한 관광이라고 해도 일상과는 다른 음식, 육체적 수고, 정신적 충격은 (조금이나마) 있기 때문에 편할 수가 없다. 익숙하지 않고, 편하지 않은 것을 찾아 떠나는 것이 여행인 셈이다. 그러기에 여행에서는 일상에서 쉽게 통제되던 기저의 성격이 드러나게 되고 여행 동반자들의 모난 성격을 맞이하게 되며 스스로 자신이 그러한 면을 보이는 건 아닌지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타인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이 발현되는 첫번째 단계에서 총구(銃口)의 방향이 자신을 향하도록 입장을 바꿔 생각하기(易地思之)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다. 이렇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깨달음'이라 부르자.
깨달음조차 의식의 변화없이는 얻을 수 없다는 다소 순환논리적인 주장은, 마치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을 통한 '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의 교리와도 비슷해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보다는 의식의 변화를, 신념의 확고부동한 상태를 벗어나기위해 불안정한 변위를 만들어내는, 또한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기위해 필요한 활성화 에너지쯤으로 봐야할 것이다.
여행의 미덕을 일상으로부터의 해방과 그에 따르는 자유로운 사고쯤으로만 생각한다면, 결국 기존 사고의 틀을 깨지 못하는 상태에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