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난치병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이제 어느 정도 스스로 조절이 가능해서 죽을 때까지 별 걱정이 없을 것 같은데, 하나는 심각해져서 일주일에 두번씩 대학병원에 다니고 있다. 사실 난치병이라고 해도 불편할 뿐이지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병도, 죽음도, 귀신도 모두 무서울 게 하나도 없는데, 정작 살아간다는 건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언제 어떤 사고가 생길지도 모르고, 개인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칠 지 모르는 일이다. 국가가 국민들을 위해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준다면 이런 불안감은 떨쳐버릴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개인 스스로가 신경써서 미래에 대한 대비책을 챙길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부모님 세대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풍요롭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교육도 충분히 받았고, 비교적 빨리 결혼해서 자녀도 어느 정도 자랐고, 이미 집과 차도 있고, 안정된 직장과 수입까지…
신체적인 난치병보다 이런 앞날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더 심각한 정신적인 난치병이 아닐까 싶다. 나만 이런 불안감을 느끼는 걸까, 아니면 우리 세대는 모두 이런 기분일까? 더 젊은 세대(88만원 세대)는 높은 등록금과 낮은 취업률로 고생하고 있으니 그에 비하면, 복에 겨운 넋두리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그 문제는 1,20년 후 다시 내 자식들이 겪어야 할 일이라서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뭘 어째야 하는지 모르는 게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