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기술서적을 사지 않기로 한 결심

결심한 지 벌써 오래이나 아직도 기술서적을 사고 있다. 기술서적이란 내 전공인 전산 관련 서적을 말한다. 1주일 전에 Oracle Bible ver 8.x를 샀다. 학생도 아니고 경력 6년차인 지금에 와서 무슨 오라클이냐고? DBMS 개발하다보면 오라클에 있는 기능이 요구사항으로 들어오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에 오라클도 잘 알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구입한 셈이다.

너무 깊이 파대면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세상에는 컴퓨터말고도 할 일이 있을 것이고 즐거운 인생을 위해서라면 직업과는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너무 기술서적을 사서 읽어대니 먹고사는 직업 기술은 늘지 몰라도 세상을 보는 눈이 좁아진다.

그렇다고 내가 교양 서적에 무관심한 것도 아니다. 작년 8월부터 약 70만원 어치의 책을 구입했는데 그 중 대부분은 소설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인터넷에서 구한 소설 텍스트 파일이 꽤 되니까 그걸 읽은 것까지 치면 교양 서적을 안 읽는다는 소린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왜 문화적 빈곤을 느끼는 것일까? 기술서적을 사지 않겠다는 결심은 전산이라는 분야에 매몰되지 말고 문화적 교양(뿐 아니라 세상살이에 필요한 재테크도 포함)을 풍부하게 쌓을 수 있도록 하자는 나 자신과의 약속인 셈인데 당장 오늘 하루를 먹고 살자니 (스스로에 의한) 직업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 우리 아버지는 왜 그 힘든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실까, 좀 더 쉽게 돈 버는 사람들도 많은데 왜 그리 어렵게만 사시나 싶었는데, 나도 직장 생활 몇 년 해보니까 그런 루틴화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몸으로 깨닫고 있다.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다소 어렵더라도 투자를 해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박사 학위같은 걸 따려고 해도 최소 2년간은 전업으로 학교를 다녀야 하고, 내 사업을 하려고 해도 당장은 병역특례기간을 때워야 할 뿐만 아니라 집도 장만해야 한다.

얼마 전에 이 나이에 유학 떠났다는 대학원 동기의 소식을 접하고서는 참 용기와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그 친구랑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나는 얼마나 용기 없고 현실에 안주하는 꼴인가…

서른. 앞으로의 30년을 계획할 나이이다.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거대한 발자취를 남길 능력도 욕심도 없지만 보람있게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준비도 하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도 해야겠지. 내가 속으로만 담아두어도 될 이런 말을 블로그에 쓰는 것은 스스로의 나약함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좀 더 굳은 다짐이 되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댓글 5개

  • 파파스머프

    요즘엔 갈수록 성인들이 책을 사지도 않고, 읽지도 않아서 1년에 평균 10권 미만이라고 하는데, 도서구입비에 많은 지출을 하시는군요. 특히 컴퓨터관련서적을 내던 출판사들이 많이 힘들어졌는데, 아마도 인터넷 인구들이 많이 늘어나면서 쉬운 책들은 사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겠지만, 전공이나 업무를 위해 깊이있는 독서(?)를 하는 분들 덕분에 그나마 버틴다고 하더군요.. 차근차근 미래를 설계하기 이해 공부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

  • Terzeron

    파파스머프님, 제가 좀 많이 쓰죠? 실은 회사에서 복리후생비를 지급하는데 제가 거의 책 사는데 사용해서 그렇습니다.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책 사댄 셈이죠. 지금도 책장에 잔뜩 꽂혀 있습니다. 올 겨울 양식을 다 마련했다고 할까요. ^^

  • dawnsea

    기술서적 안 사고 인터넷과 소스에 의존해서 지식이 늘어나고 있는 형국이긴 한데..

    안 해본 것에 대한 밑천은 점점 바닥나는 것 같습니다 -_-;
    이럴때 입문서 같은 거 하나 사고 기초적인 프로젝트가 부여되면 얼렁뚱땅 뭐 하나라도 밑천이 느는데 말이죠.

    아직도 C++, 자바, MS 개발툴들에 대한 두려움이 덜덜덜 ㅠ.ㅠ

    먹고 살라면 해 놓긴 해야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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