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절의 일기 한 자락
기억을 되짚다.
초등학교 다닐 때 일기쓰기라면 몹시 진절머리를 내서 매일 '오늘도 별 일 없었다'로 고집하곤 했다. 당연히 선생님께 혼나곤 했다. 어쩐 일인지 대학 다니면서부터 온라인 게시판에 올려두었던 글을 내 나름대로 로깅(logging)해두었던 탓인지 나중에 찾아서 읽어보면 일기랑 별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온라인 게시판에 끄적거린 일기는 오픈되어 있는 성격 탓인지 지극히 사적인 면은 교묘히 피해갈 수 밖에 없다. 이건 내가 6년 전 바로 오늘 썼던 글이다. 제목이 xxx라니 영 내 스타일이 아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런 글을 남겼던 것일까? 일주일 후에 쓴 글을 보니 '같이 식사를 하면 밥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던'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써놨다. 누군가를 열렬히 짝사랑하던 시절의 글인 것으로 짐작되지만 지금 와서는 당시의 감정으로의 이입은 불가능하다. 시간이 지난 후에는 기억조차 잘 나지 않을 사소한 일을 가지고 그 때는 왜 그리 힘들어 했을까? 이젠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98/09/03
xxx
음모를 기도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 수행하는 것 사이의 간극에는 배신이 놓여 있다. 이미 딴 생각을 품었을 때부터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는 시작되는 것이고 상대에게 돌아갈 것은 실망과 배신감뿐.
그러기에 이별의 순간은 짧을수록 좋고, 대화는 구원의 손길이 되지 못하는 법이다.
누구 말마따나 이유는 간단한 데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뭐든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배신따위는 고려해야 할 문제일 필요조차 없지않을까.
댓글 2개
파파스머프
맞아요…지금 고민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몇년 뒤 그런 고민을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게 많고, 한때 그 사람이 없으면 세상이 없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잖아요..
Terzeron
파파스머프님, 저보다 인생 선배시니까 저보다 훨씬 많이 느끼고 계시겠네요. 그냥 추억은 옛날 사진처럼 간직할 따름입니다. 옛날 사진 예쁘게 나왔던 밉게 나왔던 그냥 앨범에 보관해두잖아요. 그런 것처럼 말이죠.